[쿨리가 간다] 상처 떠안고 눈 감은 또 한 명의 위안부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위안소에 끌려간 소녀, 일흔의 나이에 목소리를 내다
길원옥 할머니는 1928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수가 꿈이었던 할머니는 13살 때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평양역에서 기차를 탔다가 만주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얻게 됩니다. 할머니는 여러 고초를 겪고 해방 후에야 인천행 배를 타고 고국에 돌아왔다고 해요. 할머니는 이후 평생 상처를 감추고 지냈는데요. 1998년 어느 날 TV에서 수요 시위 장면을 보고 용기를 내어 정부에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렸어요. 이후 할머니는 여생을 평화 운동가로 살았어요. 2020년까지 매주 수요일이 되면 수요 시위에 나섰고, 유엔 인권이사회와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등에 참석해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했습니다.
생존자는 7명뿐...진정한 사죄는 언제쯤?
길 할머니는 끝내 일본 정부의 '진짜'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길 할머니뿐이 아닙니다. 수많은 할머니들이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요구하다 눈을 감았죠.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단 7명뿐.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은 95.7세입니다. 남은 할머니들은 돌아가시기 전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받을 수 있을까요?

쿨리가 간다X꼬꼬단
뉴스 키워드: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는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군이 한국,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해 성노예로 삼은 사건이야. 일본군은 10대 소녀들을 포함한 여성들을 ‘위안소’라는 곳으로 끌고 갔고, 많은 피해자들이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어.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피해 사실을 증언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에 알려졌어. 이후 여러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언했고, 일본 정부에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했지.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여전히 형식적인 사과만을 반복할 뿐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뉴스 Q&A]
Q. 일본은 어째서 그런 만행을 저지르고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거야?
1965년 일본과 우리나라는 한일청구권협정을 맺었어. 당시 일본 정부는 우리와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한국에 5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어. 이 일로 일본은 한일간 모든 배상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하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추가적인 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거야. 위안소에는 우리나라 여성만 있었던 게 아니야. 중국, 필리핀 여성들도 위안소에 끌려갔지. 일본은 공식적으로 한국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하면, 국제사회에서 전쟁 범죄 국가로 낙인 찍히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피해를 입은 중국•필리핀 등에서도 배상 요구가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어. 이런 이유로 일본은 자국 내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를 축소하거나 삭제하면서 미래 세대가 부끄러운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막고 있지. 수요 시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이러한 태도에 분노하며, 피해자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고, 역사를 제대로 교육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거야.
1. 오늘 기사의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2. 길원옥 할머니가 오랜 시간 피해 사실을 숨기고 살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3. 수요 시위에는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아. 이들은 어떤 이유로 수요 시위에 참석하는 걸까?
❓다음 중 '쿨리가 간다'를 읽고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은? [내용 이해]
①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시위가 열려.
② 지난 19일까지 1688번의 수요 시위가 열렸어.
③ 길원옥 할머니는 해방이 된 후에야 고국에 돌아왔어.
④ 길원옥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숨기고 살았어.
정답 : ④
길원옥 할머니는 일흔 살의 나이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평화 운동가로 활동하셨어.
교과연계
5학년 2학기 사회 2. 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오늘날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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