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약탈문화재 찾기' 일생 바친 박병선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우리나라 문화재를 찾는데 평생을 바친 여성이 있어. 바로 박병선 박사야. 제47호 뉴스쿨 [WHO]코너에서는 박병선 박사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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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우리 문화재 연구에 평생을 바친 박병선을 소개합니다.

'약탈 문화재 되찾기' 외길 인생

직지에 숨결을 불어넣은 한 사람

1967년 프랑스국립도서관. 이곳의 사서로 일하던 한국 유학생 박병선은 한 귀퉁이에 방치된 책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됐다’는 기록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은 ‘구텐베르크 성서’로 알려져 있었는데요.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세계 최초’ 타이틀은 고려의 책으로 바뀌어야 했죠.

도서관에서 대장간까지...‘직지’를 증명한 사서
박병선은 정신없이 연구를 시작합니다. 한국 인쇄술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는 프랑스에서 중국과 일본의 자료를 모조리 훑어보고, 프랑스의 대장간을 돌며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됐음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 연구의 결과를 1972년 파리의 한 전시회에서 발표합니다. 전 세계에 ‘직지’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임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약탈 문화재 찾아달라”... 운명 같은 프랑스 유학
박병선은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결정했는데요. 해방 이후 프랑스 유학생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 교수들은 박병선에게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한 문화재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며 유학을 격려합니다. 때문에 박병선은 프랑스 유학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한 것도 프랑스에서 우리 문화재를 연구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결과였습니다.

50년에 걸친 문화재 찾기...2011년 의궤 반환 후 타계
이후 박병선은 본격적으로 프랑스에서 문화재를 찾아 나섭니다. 그 결과 1978년 프랑스국립도서관 별관 수장고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의궤가 약탈 문화재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았고, 박병선을 사서직에서 쫓아냅니다. 하지만 박병선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도서관을 드나들며 의궤를 연구했고, 결국 프랑스 정부는 2011년 297권의 의궤를 ‘영구 대여’의 형식으로 돌려주기로 결정합니다.
박병선은 50여 년의 시간을 타국에서 문화재를 찾는데 바칩니다. 의궤가 한국에 돌아온 해인 2011년 결국 가족도 없이 세상을 떠났는데요. 유언으로 그동안 준비 작업을 해온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의 저술을 마무리 지어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사진출처-반크
🙍🏼‍♂️
SHE is

박병선은 서울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55년 한국 여성 최초로 프랑스 유학 비자를 받고 프랑스 소르본대학교와 프랑스 고등교육원에서 각각 역사학과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들을 반환받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역사학자입니다.

[참고자료]

도서: 박병선, 직지와 외규장각의 어머니

뉴스: 연합뉴스 - 외규장각 도서 반환 기여, 박병선 박사 타계

         경향신문 - 약탈문화재인데 대여해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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