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에 잠든 파란 눈의 외국인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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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쿨러 친구들은 6월이 어떤 달인지 알고 있지? 맞아! 바로 호국보훈의 달이야. 그래서 6월에는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억하고 마음속 깊이 기리는 시간을 가져야 한대. 오늘 쿨리는 일흔 번째 현충일을 맞아서 뉴쌤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에 가보기로 했어. 현충원은 어떤 곳인지, 또 어떤 분들이 계시는지 뉴쌤께서 알려주실 거야. 어서 현충원 안으로 들어가보자~
- 쿨리 : 쌤이 현충탑 앞에 계시다고 했는데, 여긴가...?
- 뉴쌤 : 쿨리야~ 여기야~
- 쿨리 : 제가 제대로 찾아왔나보네요. 이게 현충탑이에요? 정말 높네요!
- 뉴쌤 : 그래. 현충탑은 현충원을 대표하는 상징물이야. 높이가 31m, 아파트 15층 정도의 높이니까 꽤 높아 보이지? 여기 탑 아랫부분을 보면 십자 모양이 있는데,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호국영령들을 수호한다는 의미가 있어. 쿨리는 현충원에 어떤 분들이 계시는지 알고 있니?
- 쿨리 : 한국전쟁에서 전사하신 분들이요.
- 뉴쌤 : 그래. 대부분은 그래. 이곳 국립서울현충원은 한국전쟁 직후에 만들어졌어. 당시 전사자들이 너무 많아서 이분들을 모실 곳이 필요했고 이곳에 축구장 200여개 크기의 국립묘지를 마련하게 된 거야. 다만 이곳에는 한국전쟁 전사자만 안치되어 있는 건 아니야.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투사들과 대통령, 소방관, 경찰관 등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신 분들,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의인들의 묘지도 있어.
- 쿨리 : 축구장 200여개라니 정말 넓네요.
- 뉴쌤 : 본격적으로 현충원을 둘러 보기 전에 묵념을 하자. 여기에 향을 피울 수 있는 제단이 있으니까 우리도 잠시 이곳에 서서 눈을 감고 호국영령들을 떠올려 보자.
- 쿨리 : 쌤, 탑 안에도 뭔가 있나봐요?
- 뉴쌤 : 응. 위패봉안관이 있고 지하에는 납골당이 있어. 함께 안으로 들어가볼까?
- 쿨리 : 쌤! 여기 돌판에 새겨진 이름들은 뭐예요?
- 뉴쌤 : 대부분은 한국전쟁에 참전했지만 유골이나 시신을 찾지 못한 분들의 이름이야. 이런 분들이 10만 명도 넘는대.
- 쿨리 : 아! 제가 취재했던 거네요.
- 뉴쌤 : 그래. 쿨리가 소개했던 송재숙 할머니의 아버지, 송영환 일병의 이름도 이곳에 적혀 있었겠지. 하루 빨리 이분들의 유해를 찾아서 이곳의 이름들이 모두 사라지면 좋겠네.
- 쿨리 : 쌤, 여긴 무명 용사실이래요. 왜 이름이 없을까요?
- 뉴쌤 : 한국전쟁 전사자 중에서 시신은 수습했지만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무명용사들이야. 유해 발굴 사업을 통해서 발굴을 했지만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분들 역시 이곳 봉안실에 안치되어 있어.
- 쿨리 : 우리나라를 위해 싸운 분들인데 이렇게 계신다니 마음이 아파요.
- 뉴쌤 : 선생님도 그래. 자, 이제 무후선열제단으로 가볼까?
- 쿨리 : 무후선열제단... 이게 무슨 말이에요?
- 뉴쌤 :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 중에 돌봐 줄 가족이나 후손이 없는 경우에 무후선열이라고 해. 이곳엔 우리가 잘 아는 유관순 열사의 위패도 있어.
- 쿨리 : 아! 유관순 열사가 여기에 계셨네요.
- 뉴쌤 : 응.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갖은 고문을 당하다가 숨졌는데 이후 서울 용산 이태원의 공동묘지에 묻혔지만 지금은 유해의 정확한 행방을 알 수 없게 됐어.
- 쿨리 : 이곳에서도 묵념을 하고 가야겠어요.
- 뉴쌤 : 이제 독립유공자 묘역으로 가볼까? 이곳에는 뜻밖에도 외국인이 안장되어 있어.
- 쿨리 :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분인데 외국인이라고요?
- 뉴쌤 : 그래. 대표적인 사람이 1916년에 조선에 오게 됐던 캐나다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야.
- 쿨리 : 이 분은 어쩌다 독립운동가가 되었을까요?
- 뉴쌤 : 쿨리는 혹시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에 서명했던 민족대표 33인을 기억하니?
- 쿨리 : 네. 기억하고 있어요.
- 뉴쌤 : 스코필드 박사는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릴 정도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분이야. 실제로 독립선언문을 번역해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지. 3•1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지던 당시엔 카메라를 들고 만세 시위 현장을 쫓아 다니며 기록하기도 했어. 일제가 3•1운동에 참가한 제암리(경기도 화성) 주민들을 학살했을 때도 직접 학살 현장을 찾아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직접 조사하고 보고서를 남기기도 했지. 덕분에 국제사회에 일제의 만행을 알릴 수 있었어.
- 쿨리 : 정말 큰 일을 하셨네요. 그런데 캐나다 사람인데 왜 굳이 한국 땅에 묻히신 거예요?
- 뉴쌤 : 스코필드 박사는 1920년에 일제의 압력으로 본국인 캐나다로 강제 추방됐는데 해방 이후인 1958년 우리나라에 국빈으로 초청됐대. 그때 한국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고 서울대 수의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게 됐어. 그리고 이렇게 외국인 최초로 현충원에 안장된 거야.
- 쿨리 : 쌤 말씀을 듣고 보니까 이곳에 있는 모든 묘와 위패에 저마다 특별한 사연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 뉴쌤 : 그럼 우리나라를 위해 한 평생을 바친 한 분의 위인을 더 만나러 가볼까? 충혼당으로 가보자.
- 쿨리 : 네, 좋아요!
- 뉴쌤 : 혹시 쿨리는 박병선 박사님을 기억하니? 예전에 쿨리가 취재해서 뉴스쿨러 친구들에게 소개해준 적이 있어.
- 쿨리 : 오! 기억해요. 해외에 있던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되찾은 분이잖아요.
- 뉴쌤 : 잘 기억하고 있구나. 그래.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잠들어 있던 외규장각 의궤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낸 분이야.
- 쿨리 : 박병선 박사님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 직지라는 게 밝혀진 거죠?
- 뉴쌤 : 그래. 그 전까지는 다들 독일의 구텐베르크 '42행 성서'가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줄 알았지. 그런데 78년이나 앞서 금속활자가 발명됐고, 심지어 그게 아시아의 한국이라는 나라라는 게 밝혀진 거지. 안타깝게도 직지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박병선 박사님의 노력으로 외규장각 의궤는 한국으로 돌아왔어.
- 쿨리 : 박병선 박사님이 현충원에 계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 뉴쌤 : 그래. 박사님 외에도 수많은 국가유공자들이 이곳에 잠들어 계셔. 6월 한 달만이라도 이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면 좋겠지.
- 쿨리 : 뉴스쿨러 친구들도 모두 현충원에 와보면 좋겠네요.
- 뉴쌤 : 그러면 좋겠지만 멀리 있어서 현충원을 찾기 어려운 친구들도 많을 거야. 현충원에 오지 못하더라도 영웅들을 기릴 방법이 있어. 바로 집 바깥에 태극기를 거는 거야. 현충일 당일에는 오전 10시 정각에 사이렌이 울려. 이때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1분간 바른 자세로 눈을 감고 묵념을 하면 돼.
- 쿨리 : 현충일에 태극기를 다는 방법은 제가 알려줄 수 있어요. 이렇게 깃봉과 태극기가 있으면 태극기의 세로 너비만큼 간격을 벌려서 다는 거예요.
- 뉴쌤 : 우리 쿨리 역시 장하다~ 이제 태극기를 게양하러 가보자.



✅안치
✅호국영령
✅유해
✅수습
✅발굴
✅의궤
✅묵념
✅게양

❓친구들이 뉴스쿨TV에서 배운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어. 뉴스쿨TV를 잘못 이해한 친구를 두 명 찾아봐.[내용 이해]
① 로제 : 현충원에는 아파트 15층 정도 높이의 현충탑이 있어.
② 제니 : 현충원에는 독립투사들과 대통령, 소방관, 경찰관 등의 묘지도 있어.
③ 리사 : 유관순 열사의 유해도 현충원에 묻혀 있어.
④ 지수 :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는 한국인들의 묘지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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