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기억하는 6월 | 제53호
한국전쟁 마침표 찍은 지 70년
가족 품 찾지 못한 12만 호국영웅
매해 6월 6일 대통령과 많은 정치인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엄숙한 모습으로 모인 가운데 현충일 추념식을 진행하는 서울 동작구의 국립서울현충원. 현충원의 상징인 현충탑 지하에는 '위패 봉안관'이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빼곡하게 이름이 적힌 새까만 석판이 벽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데요 바로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위패입니다. 6∙25 전쟁 당시 전사자이지만 끝내 유골이나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3000여 명의 위패가 위패 봉안관과 국립서울현충원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 위패 봉안관에서 한층 더 내려가면 시신은 있지만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전사자 5000여 위를 모신 무명용사 봉안당도 있습니다.
유해 발굴 작업 더딘 속도
전쟁 당시 전사하거나 실종된 사람은 16만2,000여명에 이르는데요 이중 2만9,000여명만이 전쟁 직우 서울과 대전의 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휴전협정으로 한국전쟁이 멈춘지 꼭 70년이 흐른 올해, 12만2,000여명, 그러니까 10명 중 7명의 전사자들은 여전히 이름 모를 산야에 묻혀 있습니다.
정부는 2000년부터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에 힘을 쏟았습니다. 지난달 30일에는 19세 나이로 한국전쟁에서 조국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고(故) 고영기 하사의 시신이 73년 만에 가족을 찾았는데요. 시신이 고 하사임을 확인하는 데까지는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참전 군인부터 의사자까지 호국영웅으로
본래 국립현충원은 1953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안장하기 위해 곳이었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의 독립 운동가들, 최근에는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 용감한 이들(의사자)도 호국영웅으로 인정하고 현충원에 모시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다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은 고(故) 임세원 의사가 의사자로 인정돼 국립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1. 오늘 기사에서 전하려는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2. 국립현충원에 군인 뿐 아니라 의사까지 안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 정부는 왜 2000년이 되어서야 유해 발굴에 나섰을까?
둘로 갈라진 한반도
둘로 쪼개진 한민족
우리나라의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 본 적이 있나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위로 뛰어오르는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이 호랑이의 허리 부분은 휴전선이라는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한반도의 남쪽, 남한입니다. 휴전선 인근에서는 군인들이 총을 들고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 때문에 남북의 사람들은 누구도 마음대로 휴전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통일만 기다렸는데…1950년 6월 25일 새벽의 총소리
한국은 전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분단 국가입니다. 하나의 나라에 살았던 우리 민족은 어쩌다 고작 철조망 하나 때문에 서로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된 걸까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1945년 8월 15일, 꿈에 그리던 독립을 맞이한 그날로 거슬러 가야합니다.
독립 직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두 나라 미국과 소련은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을 만나 각자의 편에 서도록 유도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미국편, 소련편으로 나뉘어 싸웠고 1948년 남과 북에 각각의 정부를 세웁니다. 위도 38도를 기준으로 나라가 두 동강 난 거죠. 많은 사람들이 둘로 쪼개진 나라가 다시 하나가 되길 고대했습니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서 이런 꿈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집니다.
전쟁 잠시 멈춘 채 70년...평화를 원해요
전쟁은 엎치락뒤치락 하며 3년간 이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북한군의 수가 더 많았지만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했고, 다시 중국, 소련 등이 북한을 도와주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됐죠. 한반도는 순식간에 전 세계의 군인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전쟁터로 돌변했고, 결국 양측은 1953년 7월 휴전을 결정합니다. 휴전은 전쟁을 잠시 쉬기로 했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는 2023년 현재까지 70여년 간 또 다른 전쟁 없이 휴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까지 끝난 것은 아닙니다. 당시 전쟁 중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500만 명, 고향을 떠난 피난민은 1000만 명에 이릅니다. 또 남과 북에 두고 온 가족을 70여 년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로 살아온 이산가족의 아픔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1. 두 동강 난 나라가 다시 합쳐지길 바란 사람들은 누구일까?
2. 미국과 유럽 국가들, 중국 등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3. 이산가족들은 휴전 이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제53호 뉴스쿨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 HEADLINE - 가족 품 찾지 못한 호국영웅 12만
- LETTER - 이렇게 읽어주세요(+뉴스쿨TV)
- VIEW - 우리는 갈라진 나라에 살고 있어
- QUIZ
- WORD&PUZZLE
- BOOKS
- ZOOM - 여행으로 만나는 한국전쟁
++WRITING
[초등교과 연계]
5학년 2학기 사회 2단원 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오늘날의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