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과학자도 소방관도 될 수 있는 ‘전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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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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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전자코 | 인공지능 | 후각 감지


전자코, 진화는 계속된다
의사도 과학자도 소방관도 될 수 있는 ‘전자코’
그래픽=이진영

‘인간의 오감(五感)을 감지하는 최첨단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하겠다.’

삼성전자는 지난 5일 최신 반도체 기술을 소개하는 ‘삼성시스템LSI테크데이’ 행사에서 후각을 감지하는 반도체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까지 사람의 오감 중 청각·시각·촉각은 구현됐지만 후각, 미각을 감지하는 칩은 개발되지 않았는데 사람처럼 냄새를 맡는 ‘전자코’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후각은 청각·시각과 달리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달라 디지털화하기 어려웠다. 공기 중에 특정 화학 분자가 있다는 것을 감지해도 얼마나 심각한 정도의 농도인지 해석하는 ‘뇌’의 역할을 구현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사람의 뇌와 신경구조를 모방하는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후각을 감지하는 전자코 개발도 빨라지고 있다. 전자코는 유해가스 검출, 식품 검사 등 다양한 영역에 활용될 수 있다. 후각 감지 기능을 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구현하는 것을 넘어 암·치매·파킨슨병 등 난치성 질환을 조기에 진단하는 연구도 상당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전자코로 암·파킨슨병 진단

최근 전자코는 사람의 후각과 비슷한 수준으로까지 개발되고 있다. 미국 구글리서치 브레인팀, 후각 기술 AI 스타트업 오스모로 이뤄진 공동 연구팀은 지난 8월 “화합물 분자 구조에 따라 50만 가지 서로 다른 냄새를 분별할 수 있는 AI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물질의 성질에 따라 냄새를 나타낸 후각 지도를 제작한 뒤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통해 후각 예측 AI 프로그램인 ‘스니퍼’를 훈련시켰다.

스니퍼는 인간과 비교 실험에서 높은 후각 능력을 증명했다. 15명의 피실험자에게 323개의 서로 다른 냄새를 맡게 한 뒤 스니퍼가 평가한 값과 비교해 보니 절반 이상의 사례에서 스니퍼의 값이 더 정확했다. 주택·공장에서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유해 가스를 조기에 감지하는 기술도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종윤·윤정호 박사 연구팀은 지난달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에 “사람의 뇌·신경세포를 모방한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을 활용해 사람처럼 유해 가스 유출을 감지할 수 있는 전자 소재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92.76%의 정확도로 가스 누출을 감지하는 데 성공했다.

후각을 감지하는 기술은 의학 분야에도 적용되고 있다. 사람의 호흡 성분 변화를 감지해 질병에 걸렸는지를 가려내는 것이다. 중국 저장대의 첸 싱, 류 준 교수 연구진이 지난 3월 “파킨슨병 환자에서 나오는 휘발성 화학 물질을 감지해 손발이 떨리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조기 진단할 수 있는 AI 후각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미국화학회(ACS)가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ACS 오메가’에 발표했다. 파킨슨병은 뇌의 신경세포가 줄어들면서 손발이 떨리는 등 운동 장애 증상이 나타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사람마다 초기 증상이 달라 조기 진단이 어렵기 때문에 발병 초기에 잡아내면 치료를 통해 증상 악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연구진은 과거 영국의 한 전직 간호사가 파킨슨병 환자 특유의 체취를 감지할 수 있다는 뉴스 기사를 보고 전자코 개발을 시작했다. 파킨슨병 환자 피부에는 지방을 분비하는 피지에 특정 유기 화합물이 많이 있다. 이 화합물들이 피부에 사는 미생물인 효모에 작용하면서 환자 특유의 체취를 만든 것이다. 연구진은 체취를 감지하는 전자코를 개발해 79.2% 정확도로 병을 진단했다.

국내에서는 광주과학기술원이 후각 자극을 통해 알츠하이머 증상을 5분 내에 구분할 수 있는 후각 감지 기술을 개발했다.

◇썩은 육류 정확히 가려내

전자코는 산업 현장에서 활용도가 높을 전망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권오석 박사는 지난해 육류의 신선도를 확인할 수 있는 휴대용 전자코를 개발했다. 고기가 상하면 표면에 있는 단백질이 변형되며 카다베린·푸트레신이라는 화합물이 발생하는데 이를 감지하는 것이다.

식품 회사에는 냄새를 전문적으로 맡는 검사 직원의 후각 능력을 키워주는 기기도 등장했다. 일본 전자 기업 소니는 지난달 사람의 후각 능력을 점검하고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기를 출시했다. 앱과 연동한 기기를 통해 딸기, 포도, 버터 등 40가지의 식품 냄새를 맡으면서 후각을 기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맥주 공장에서는 효모를 발효시키면 여러 아로마 성분이 만들어지는데 사람이 이 냄새를 맡아 맥주가 잘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한다. 이때 검사 직원이 작업 전에 기준이 되는 아로마 향을 맡고 난 뒤 검사에 투입하면 보다 검사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소니는 “특정 신경 질환이 있으면 후각 능력이 가장 먼저 떨어져 냄새를 구분하지 못하는 점을 활용해 치매 진단 기기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산불 방지를 위해 카메라 같은 시각 기술뿐 아니라 후각 감지 기술도 동원된다. 미국 오클랜드에선 화재 경보기처럼 연기 냄새를 감지할 수 있는 고성능 센서가 산에 배치됐다. 이 센서는 공기 중에 소량의 일산화탄소·이산화탄소·아산화질소 가스만 있어도 이를 감지해 화재 여부를 알아낸다. AI가 센서에 수집된 냄새 데이터와 주변 풍속 등을 종합 분석해 발화 지점, 규모도 예측한다.

조선일보 최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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