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금색글자 현판-월대, 100년만에 제모습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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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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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현판 | 월대 | 복원
‘검정 바탕에 금색 글자’ 문헌 확인
경복궁 중건 당시 필체로 현판 제작
1923년 일제가 철거한 월대 복원
난간석-서수상도 옛 모습대로 배치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화문 현판을 가리고 있던 흰색 천이 걷히자 검정 바탕에 금색으로 ‘光化門’이라고 쓰인 새 현판이 드러났다. 기존 현판은 흰 바탕에 검정 글씨로 쓰여 있었다. 시민 500여 명이 환호했다. 13년 동안 ‘부실 복원’ 논란을 빚은 광화문의 얼굴이 제 모습을 찾은 순간이었다.
복원된 광화문 월대(月臺·궁궐 주요 건물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터보다 높게 쌓은 단)도 이날 함께 공개됐다. 광화문이 일제가 훼손하기 전의 모습을 약 100년 만에 되찾은 것이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광화문은 경복궁의 얼굴”이라며 “월대와 현판 복원을 통해 2010년부터 추진한 광화문 복원 사업이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 광화문 현판, 200년 넘은 적송 위에 글자판 붙여
광화문 현판 복원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문화재청은 2010년 광복절에 새 현판을 복원해 걸었지만 3개월 만에 목재 표면이 갈라졌다. 학계에선 흰 바탕에 검정 글자로 만든 현판이 제대로 된 고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2016년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본명 김영준) 대표가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소장된 광화문 사진을 찾아내 공개하면서 현판이 원래 검정 바탕에 밝은 글씨로 쓰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경복궁 영건일기’에서 광화문 현판이 ‘黑質金字’(흑질금자·검정 바탕에 금색 글자)라는 기록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현판의 옛 모습 복원이 추진됐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2018년부터 5년간 전문가 고증을 거쳐 현판을 제작했다. ‘경복궁 영건일기’ 기록을 토대로 도금한 동판에 글자를 오려 현판 위에 붙였다. 기존 현판은 글자를 새겨 넣었다. 새 현판은 강원 양양 등에서 확보한 수령 200년 넘는 적송을 건조해 만들었다. 배경 칠엔 아교와 전통 안료를 사용했다. 현판 제작에는 장인 6명이 참여했다.
한글 현판을 내걸어야 한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지만 흥선대원군이 1865년 경복궁을 중건했을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필체를 사용하기로 결정됐다. 크기는 가로 427.6㎝, 세로 113.8㎝로 기존 현판(가로 390.5㎝, 세로 135.0㎝)보다 가로 길이는 조금 더 커지고 세로는 줄었다.
● 난간석 서수상, 월대 복원 맞춰 발견돼
월대는 흥선대원군이 임진왜란 후 27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았던 경복궁을 중건하며 정문인 광화문의 격을 높이기 위해 쌓았다. 1923년 일제가 전차선로를 설치하며 철거됐다.
복원 과정에선 전차 선로가 발굴됐다. 지난해엔 일제가 철거한 월대의 난간석 40여 점이 경기 구리시 동구릉에서 발견됐다. 올해 8월엔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야외에 1982년 개관 때부터 전시됐던 서수상(瑞獸像·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 1쌍이 원래 월대의 어도(御道) 앞을 장식했다는 사실이 시민의 제보로 밝혀졌다.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유족이 문화재청에 서수상을 기증했다. 난간석과 서수상은 복원된 월대에 옛 모습대로 배치됐다.
일각에서는 월대의 역사가 깊지 않고, 광화문 앞을 지나는 사직로를 직선에서 ‘U’자로 바꾸면서까지 복원할 만한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광화문이 복원돼 우리의 살아 있는 역사가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의 옛 모습을 복원하는) 여러 사업을 마무리하는 화룡점정”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동아일보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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