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기억하는 시간
이 콘텐츠는 뉴스쿨 News'Cool이 2023년 6월 2일에 발행한 제53호 뉴스레터입니다.
제53호 뉴스쿨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 HEADLINE - 가족 품 찾지 못한 호국영웅 12만
- 뉴스쿨TV - 현충일에 해야 할 일
- VIEW - 우리는 아직 갈라진 나라에 살고 있어
- BOOKS - 기이한DMZ생태공원 ㅣ 그 여름의 덤더디 ㅣ 여성비행사 권기옥
- ZOOM - 여행으로 만나는 한국전쟁
++WRITING
한국전쟁 마침표 찍은 지 70년
가족 품 찾지 못한 12만 호국영웅
매해 6월 6일 대통령과 많은 정치인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엄숙한 모습으로 모인 가운데 현충일 추념식을 진행하는 서울 동작구의 국립서울현충원. 현충원의 상징인 현충탑 지하에는 '위패 봉안관'이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빼곡하게 이름이 적힌 새까만 석판이 벽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데요 바로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위패입니다. 6∙25 전쟁 당시 전사자이지만 끝내 유골이나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3000여 명의 위패가 위패 봉안관과 국립서울현충원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 위패 봉안관에서 한층 더 내려가면 시신은 있지만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전사자 5000여 위를 모신 무명용사 봉안당도 있습니다.
유해 발굴 작업 더딘 속도
전쟁 당시 전사하거나 실종된 사람은 16만2,000여명에 이르는데요 이중 2만9,000여명만이 전쟁 직우 서울과 대전의 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휴전협정으로 한국전쟁이 멈춘지 꼭 70년이 흐른 올해, 12만2,000여명, 그러니까 10명 중 7명의 전사자들은 여전히 이름 모를 산야에 묻혀 있습니다.
정부는 2000년부터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에 힘을 쏟았습니다. 지난달 30일에는 19세 나이로 한국전쟁에서 조국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고(故) 고영기 하사의 시신이 73년 만에 가족을 찾았는데요. 시신이 고 하사임을 확인하는 데까지는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참전 군인부터 의사자까지 호국영웅으로
본래 국립현충원은 1953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안장하기 위해 곳이었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의 독립 운동가들, 최근에는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 용감한 이들(의사자)도 호국영웅으로 인정하고 현충원에 모시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다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은 고(故) 임세원 의사가 의사자로 인정돼 국립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1. 오늘 기사에서 전하려는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2. 국립현충원에 군인 뿐 아니라 의사까지 안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 정부는 왜 2000년이 되어서야 유해 발굴에 나섰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