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의 비극, 간토대학살을 아시나요? | 65호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수천 명 조선인 죽인 100년 전 가짜뉴스
지난 1일 일본 도쿄의 스미다구 요코아미초 공원에는 오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지난 1923년 일본 간토 지역의 대지진 이후 벌어진 대규모 학살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원에 마련된 작은 추모비 앞에는 수 백 명이 모였는데요. 특히 올해는 사건이 벌어진 지 100년이 되는 해인 만큼 전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1923년 9월 1일, 일본 열도를 흔든 지진 발생
간토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즈음 일본 간토 지방에서 발생한 규모 7.9의 대형 지진입니다. 지진의 강도는 보통 10단계로 나뉘는데요. 이 중 규모 7은 가만히 서 있을 수 없고 땅과 건물에 금이 갈 정도로 강도가 높습니다. 이 지진으로 당시 일본에서는 10만5000~13만 명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실종됐습니다.
약 29만 채의 집이 무너지거나 불에 타면서 사람들은 갈 곳을 잃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망연자실한 가운데 더 큰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당시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 통치하던 일제강점기였는데요.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힘든 노동과 괴롭힘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일본인들이 일본에 사는 조선인과 중국인들에게 애꿎은 화를 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근거없는 소문에 조선인 6000명 이상 무차별 학살
사건의 발단은 유언비어였습니다. 가족과 재산을 잃고 침통해 하던 일본인들 사이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불을 질렀다'는 식의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진 거죠. 일본인들 사이에서 조선인에 대한 분노가 커졌고, 결국 '자경단'이라고 불리는 일반인 집단과 군인, 경찰들이 조선인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조선 옷을 입은 사람을 공격했습니다. 조선인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때는 발음이 어려운 일본어를 말하도록 시키기도 했어요. 그리고 조선인이란 사실이 드러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총과 칼을 휘둘렀습니다. 당시 독립신문은 일본 내 조선인 유학생들이 진행한 조사를 토대로 조선인 학살의 희생자가 6600여 명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공식적인 기록 없다" 숨기는 일본 정부
당시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조선인들이 잘못된 소문으로 공격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다른 나라로부터 비난 받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죠. 그래서 잡혀 온 자경단을 무죄로 풀어주고 사건을 숨기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일본 정부는 "공식적인 기록이 없다"며 사건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끔찍한 사건인 만큼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부끄러운 역사를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일부 일본인들은 1974년부터 요코아미초 공원에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를 세우고 매해 추도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추도 행사를 주최한 미야가와 야스히코(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실행위원회 위원장)는 "일본 정부와 도쿄도는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조사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1. 오늘 기사에서 전하려는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2. 일본 도쿄에 간토대학살 추모비가 세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3. 일본 정부가 100년 전 벌어진 끔찍한 학살을 현재까지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65호 뉴스쿨 디지털북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 HEADLINE -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수천 명 조선인 죽인 100년 전의 가짜뉴스
- LETTER - 이렇게 읽어주세요(+뉴스쿨TV)
- QUIZ
- PLAY - 친구들에게 간토대학살 교과서를 나눠줘
- BOOKCLUB - 책으로 만나는 일제강점기
[초등교과 연계]
6학년 2학기 국어 나-6 정보와 표현 판단하기
6학년 1학기 사회 1단원 세계의 여러 나라들
5학년 2학기 사회 2단원 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오늘날의 우리
4학년 2학기 사회 3단원 사회변화와 문화의 다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