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리가 간다] 78번째 광복절...애국지사가 돌아왔다
독립운동가
애국지사
일본에 남은 마지막 애국지사 오성규(100) 지사가 지난 13일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지사는 자신의 뜻을 펼치고 생각을 널리 퍼뜨리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날 오 지사가 도착한 김포공항에서는 국방부 의장대와 한국 어린이역사합창단 등이 성대한 환영 행사를 열며 오 지사를 맞이했습니다.
Q. 애국지사가 뭐길래 이렇게 환영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해.
첫 번째는 의사야.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를 잘 알고 있지?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서 총과 칼을 들고 싸우다가 끝내 자신의 목숨을 내준 분들을 '의사'라고 불러.
두 번째는 열사야. 누가 있을까? 유관순 열사가 있어. 열사는 '비무력' 다시 말해 총과 칼 같은 무기를 드는 대신 여러가지 방법으로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이야. 유관순 열사는 총과 칼을 들지 않았지만 태극기를 높이 들고 만세 운동을 하다 돌아가셨지. 이런 분들을 '열사'라고 해.
세 번째는 지사야. 지사는 현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고, 학생들을 가르쳐서 나라를 지키는 데 기여한 사람들을 말해. 대표적으로 2017년 영화로도 소개됐던 사회운동가 박열 지사가 있어.
Q. 오성규 지사는 누구야?
오 지사는 1923년에 태어났어. 그때는 한창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우리 민족을 가혹하게 탄압했을 때야. 오 지사는 중학교 졸업을 앞둔 16세에 독립 운동에 힘을 보태기 위해 '주태석'이라는 가명으로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던 광복군에 입대했어. 가만히 있으면 일본에 끌려가 일본의 군인이 될 상황이었거든. 그는 광복군에 합류하기 위해서 너덜너덜한 짚신을 신은 채로 꼬박 20일을 걸어가 광복군이 있는 곳까지 갔다고 해. 광복 후에는 일본에 남은 교민들을 보호하는데 힘썼대.
Q. 그런데 왜 지금까지 일본에 있었던 거야?
해방된 후 우리나라는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져 갈등했는데 이런 혼란 속에 오 지사는 조국을 떠나있기로 결심했대. 사람들이 갈라져 대립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독립을 위해 열심히 애쓴 사람들이 경찰 조사를 받는 일까지 있었거든. 그때는 나라를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인데도 북한과 가까워 보이면 범죄자 취급을 받곤 했어. 그래서 결국 일본으로 가서 정착해 살게 된 거야.
Q. 이번에 한국에 어떻게 돌아온 거야?
일본에 살고 있던 오 지사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조국에서 보내고 싶다고 말했대. 그래서 정부 대표단이 지난 11일 일본 도쿄에 가서 직접 오 지사를 모셔왔지.
Q. 독립을 위해 싸운 분들이 아직 외국에 많이 있어?
아니야. 오 지사가 국내로 귀국하면서 이제 해외에 살고 있는 독립유공자는 미국의 이하전 지사 한 사람만 남게 됐어. 국내에도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나라에 있는 8명을 포함해 총 9명의 독립유공자가 현재까지 살아있는 셈이야. 독립운동가들의 목숨을 건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을까? 광복절을 맞이해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
1. 70여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오 지사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2. 오성규 지사는 일본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일본 사람들이 오 지사를 어떻게 평가했을지 함께 생각해봐.
3. 몇 분 남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
쿨리가 간다X꼬꼬단
✅독립운동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육 활동에 나선 모든 사람들.
✅성대하다: 풍성하고 큰 행사.
✅모시다: 웃어른을 가까이에서 챙기고 대접해주는 일.
✅모셔오다 : 극진히 대접하며 데리고 오다.